- [재미있는 유방이야기]핑크리본의 유래
핑크리본의 유래
![[재미있는 유방이야기]핑크리본의 유래](http://mastopia.com/pds/editor/11-8여러가지-핑크리본들.gif)
핑크리본은 유방암의 계몽과 의식향상의 상징으로 널리 알려져있습니다.
10월은 유방암 의식향상의 달로 핑크리본을 심벌로 하여 전세계에서 유방암의 예방과 조기 진단, 치료, 재활, 연구기금조성 등을 위한 다양한 캠페인 활동이 펼쳐집니다. 그런데 이 핑크리본이 어떻게 해서 유래가 되었는지는 잘 모르는 사람들도 많고, 또 서로 엇갈리는 이야기들이 많다.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웹사이트와 문헌에서는 ‘파티에 가기 전에 코르셋을 버리고 실크 손수건 2장과 핑크리본으로 앞가슴을 감싼 핑크리본 브래지어''에서 핑크리본이 유래되었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오해로 인해 잘못 알려진 것으로, 핑크리본의 실제 유래는 아래와 같습니다.
리본 캠페인의 시초는 Yellow Ribbon
여러가지 색의 리본이 특정한 이념과 주제에 대한 홍보와 계몽, 그리고 그 참가자들의 동일체 의식을 함양하기위한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그 시초는 Yellow Ribbon이다.
3년의 형기를 마친 재소자가 연인에게 편지를 쓴다. ‘이제 곧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오.
아직도 당신이 날 사랑하고있다면 집 앞의 오래된 떡갈나무에 노란리본을 달아주오. 노란리본만이 나를 자유롭게 해줄 수 있다오.’ 두려운 마음을 안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다가가고있는 그의 눈앞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진다.
수 백개의 노란 리본이 오래된 떡갈나무에 매달려 그를 반기고 있다. 1973년 미국의 팝 뮤직 그룹인 Tony Orlando & Dawn의 히트송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e Oak Tree의 내용이다.
이 노래는 월남전 포로들의 귀환과 맞물려 공전의 히트를 하게 된다.
1973년 빌보드 핫 100 싱글 차트에서 4주 동안 1위에 머물렀고 발매 3주 만에 320만 장이 팔렸으며, 빌보드는 1973년 ''올해의 노래'' 로 선정하였다.
1979년 11월 4일, 이란의 테헤란에서 미국에 망명한 팔레비국왕의 신병 인도를 요구하던 과격파 학생 시위대가 시위 도중 미국대사관에 난입하여 약 70여 명의 미국 외교관을 인질로 억류하였다.
U.S. Charge d''Affaires였던 Bruce Laingen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그의 아내 Penne Laingen은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e Oak Tree라는 노래와 워터게이트사건으로 감옥에 갔다가 출소한 Jeb Stuart Magruder의 아내 Gail Magruder가 남편의 출소를 환영하면서 집앞 현관에 yellow ribbon을 달아놓은 것을 텔레비전에서 보고 영감을 얻었다. 그리고는 Maryland Bethesda에 있는 그녀의 집 앞뜰 떡갈나무에 Yellow Ribbon을 매달고는 남편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원함과 동시에 사람들에게 이란 인질들을 잊지말아달라고 호소하였다.
이것이 리본이 사회적 계몽 캠페인에 사용된 최초의 기록이다.
Penne의 리본은 그해 12월 10일 Barbara Parker에 의해 워싱턴 포스터지에 ‘Coping With IRage’ 와 ‘Penne Laingen''s Wait.’라는 제목의 두 개의 기사로 소개되었다.
이 기사에서 Penne Laingen은 이렇게 말했다. “기도를 하면서 기다리겠어요. 그리고 어느날 브루스가 돌아와서 그 리본을 풀 것이고, 그 때까지 그대로 둘 거예요.” Penne의 Yellow Ribbon은 1980년 1월 28일 CBS를 통해서도 방송되었고, 이후 미국 전역에서 인질들의 조기 석방과 무사 귀환을 기원하는 Yellow Ribbon이 매달려졌다.
1981년 1월, 인질들은 석방되었고 Laingen부부는 직접 노란리본을 풀었고 그 리본을 1991년 미국 의회도서관에 기증하였다. Yellow Ribbon은 1991년 걸프 전쟁과 이라크 전쟁에 참가한 미군들을 상징하고 그들을 지지하는 심벌로 그리고 전후에는 귀환 장병들을 환영하는 표시로도 사용되었다.
AIDS와 Red Ribbon
의료부분에서 처음 생겨난 리본중의 하나는 Red Ribbon이다. 1991년, 뉴욕의 예술가 단체인 Visual AIDS Artists Caucus는 에이즈 환자들과 그들을 돌보는 사람들에 대한 성원을 나타내는 시각적인 상징물을 만들려고 하였다.
그들은 Yellow Ribbon에서 영감을 얻어 피와 연관이 되어있고 열정과 사랑을 상징하는 붉은 리본을 만들었다.
그해 토니상 시상식에서 Jeremy Irons가 Red Ribbon을 달고 나왔고 이후 많은 헐리우드 스타들이 이에 동참하였으며 Red Ribbon은 AIDS에 대한 전세계적인 심벌이 되었다.
Mary Phelps Jacob의 Pink Ribbon는 브래지어의 부재료
Mary Phelps Jacob (애칭 : Polly)는 1900년대초 미국 사교계에서 그녀가 나타나지않으면 그녀가 올 때까지 기다리거나 파티를 연기할 정도로 거물인 사교계의 여왕이었다. 1910년의 어느날, 데뷔 파티를 앞둔 폴리는 지금까지 보지못한 아주 멋진 드레스를 보게 되었다.
매우 얇고 가벼워서 춤을 추기엔 안성맞춤이었고 턴을 돌면 치맛자락이 마치 부채처럼 펼쳐지는 그런 드레스였다. 그런데 문제는 속이 다비쳐보이고 목선이 깊게 파여 그 안에 코르셋을 입으면 코르셋의 철선과 뼈대가 삐쭉 튀어나와 아주 우스꽝스러운 모양이 되고, 상체부분이 비쳐보여 그 안에 코르셋을 입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파티걸 폴리는 모든 사람의 시선을 한 번에 끌 수 있는 이 신상(新商) see-through 드레스를 포기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맨몸을 노출할 수도 없는 안타까운 상황에 처했다.
눈물이 앞을 가려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던 그녀에게 아이디어가 번쩍 떠올랐다. “그래 바로 이거야. 손수건 이것 하나면 충분히 가슴을 가릴 수 있어.” 하녀에게 손수건 두 장을 실로 꿰매라고 한 후, 가슴에 대 보니 딱 알맞은 모양이 되었다. “그런데 이것을 어떻게 고정할까?”하고 고민하던 폴리에게 드레스의 허리를 감싸던 pink ribbon이 눈에 띄였다.
두 개의 리본을 양 어깨위로 두르고 가슴 아래에 하나를 두르니 착용하기에 아주 가볍고 편하면서 멋진 속옷이 되었다. 이것이 현대적인 브래지어면서 일반에게 널리 퍼진 최초의 브래지어이다.
![[재미있는 유방이야기]핑크리본의 유래](http://mastopia.com/pds/editor/11-6펠프스의-브래지어-특허.gif)
폴리의 브라를 본 친구들은 자기들에게도 하나씩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였고, 전혀 모르는 낯선 사람도 자기 것을 하나 만들어달라고 1달러를 보내온 것을 보고 그녀는 “이것이 사업이 될 것이다.”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미국특허청에 특허를 신청하여 1914년 11월 3일 ‘Backless Brassiere’라는 이름으로 특허를 취득하였다.
폴리는 이 브래지어를 ‘Caresse Crosby’(개명한 그녀의 이름이기도하다)라는 이름으로 팔았다. 그러나 사업실적은 신통하지못하였고 결국 특허권을 1,500달러 (지금으로치면 30,000달러정도)에 Warner Brothers Corset Company에게 팔았다. 이 회사도 처음에는 큰 재미를 보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1차 대전이 일어나자 1917년 U.S. War Industries Board는 쇠를 전쟁물자 생산에 사용하기 위하여 여성들이 코르셋을 새로 구입하는 것을 자제하도록 하였다.
이 조치를 통해 2척의 군함을 건조할 수 있을만큼되는 28,000톤의 쇠를 아낄 수 있었다.
전쟁으로 인해 공장에서 일하게 된 여성들은 유니폼을 입게 되었고 실제적이고 편한 속옷이 필요하게 되었다.
Warner사는 폴리의 브래지어 특허를 이용하여 그후 30년동안 1,500만불 이상을 벌게 되었다.
핑크리본의 유래에 대해 우리나라의 많은 웹페이지와 문헌에서는 ‘가슴을 꼭 죄이는 코르셋 대신 실크 손수건 2장과 핑크리본으로 앞 가슴을 감싼 핑크리본브라에서 유래’되었다고 소개되어있다.
1910년대의 폴리의 pink ribbon은 브래지어를 만들기위한 부재료였지 유방암의 의식이 담겨있지않은 유방암과 무관한 것으로 이것이 유방암의 상징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핑크리본의 발상지인 미국에서,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www.wikipedia.org)를 비롯한 어떤 웹페이지나 문헌에서도 핑크리본의 origin에 대해 설명할 때 폴리의 핑크리본브라를 언급하는 곳이 없다.
원래의 취지와는 다르게 해석하여 이를 인용하고 퍼나르면서 부풀려져 급기야는 1990년대의 애블린 로더가 1910년대의 ‘핑크리본브라’를 입는 이야기까지 만들어진 것이다.
Pink Ribbon을 처음 나누어 준 것은 Komen 재단
유방암의 심벌로 핑크리본이 문헌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1990년 6월 16일이다.
Susan G. Komen재단은 워싱턴 DC에서 유방암 계몽 걷기 대회인 ‘Race for The Cure’를 개최하였고 이날 행사에 참가한 8529명의 참가자들에게 pink visor를 나눠주었는데, 이날 참가자중에는 핑크리본을 달고 나온 사람들이 있었다. 이듬해 뉴욕에서 열린 Race for The Cure에서 Komen재단은 참가자들에게 핑크리본을 나누어주었다.
그러나 이 때에는 핑크리본이 대중적인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Pink Ribbon 캠페인의 뿌리는 Peach Ribbon
68세된 Charlotte Hayley라는 할머니가 있었다. 그녀의 할머니, 누이, 딸이 모두 유방암에 걸렸었다.
1992년, 할머니는 그녀의 주방에서 peach색의 ribbon을 손수 만들었다. 그리고는 한 장의 카드와 함께 이 리본을 동네 식료품가게에서 주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그 카드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
“국립암연구소(NCI)의 1년 예산은 18억달러에 달하지만 암 예방에 쓰이는것은 고작 5%에 불과합니다.
이 리본은 달고 우리의 입법가들을 일깨워줍시다.”라고 쓰여있었다. Harley의 활동은 입에서 입으로, 그리고 컬럼리스트 Liz Smith의 ‘ Haley’s grassroots organizing effort’ 라는 컬럼을 통해 알려지게 되었다. 이 Peach Ribbon이 최초의 유방암 계몽 캠페인의 상징 리본이다.
Pink Ribbon을 대중에게 심은 Evelyn Lauder
1992년 초, 건강잡지 Self의 편집장 Alexandra Penney는 유방암 계몽의 달 특집호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녀는 유방암의 상징물을 만들어 뉴욕의 화장품 회사를 통해 나눠주는 아이디를 착안하였다. 그리고 이 생각을 그녀의 친구이자 유방암 survivor인 Estee Lauder화장품회사 부회장 Evelyn Lauder에게 제안하였고, Lauder는 흔쾌히 그 제안을 수락하면서 뉴욕이 아니라 전미 전역을 통해 뿌리겠다고 하였다.
그러던 중 이들도 Peach Ribbon에 대해 알게되어 Haley에게 그녀의 concept을 함께 사용하자고 제안하였다.
그러나 Haley는 Penney 와 Lauder의 활동이 너무 상업적이라면서 그 제안을 거절하였다.
Penney 와 Lauder는 변호사들에게 자문을 구하였고, 변호사들은 그렇다면 다른 색을 선택하면 된다고 조언해주었다. 그들은 사람을 위축시키고 파괴하는 유방암과는 달리 밝고 활기차고 강하면서 건강과 여성을 상징하며, 마음을 진정시키고 스트레스를 경감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핑크색을 선택하였다.
그 해에만 150만개의 핑크리본이 유방자가검진카드와 함께 Estee Lauder
- - 아름다운 유방
- - 정상 유방
- - 유방과 친해지자
- - 유방자가 검진
- - [재미있는 유방 이야기] 은하수 = 헤라여신의 젖
- - [재미있는 유방이야기] 그대 이름은 무엇인가? 유방인가 가슴인가 ** 인가
- - [재미있는 유방이야기] 짝젖 예찬
- - [재미있는 유방이야기] 유방은 왜 거기에 있을까?
- - [재미있는 유방이야기] 브래지어의 역사
- - [재미있는 유방이야기]핑크리본의 유래




1 







